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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소코스군이 한 곳으로 집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집결 장소가 문제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해레이스는 소코스 정복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알려주었다.
“바로 남동쪽의 아이단 지역입니다.”
“네메아와의 국경 지역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아마 네메아를 노리고 있는 거겠죠.”
소코스의 국왕 스카나비스 7세는 국내에서의 전투를 포기하고 네메아로 전쟁터를 로투스바카라 확장하기로 결심한 듯 하다.
지난 몇 달 동안 소코스는 킬키스와 필리아트라, 그리고 네메아 군을 상대로 힘겨운 전쟁을 벌여왔다.
동부에서는 킬키스 군이, 서쪽 에서는 필리아트라 군이 압박하고 있었고, 네메아에서는 특수전 사령부가 소코스 전역을 마구잡이로 이동하며 테러전을 벌이고 있었다.
가장 골치 아픈 것은 역시 특전사의 기습 공격이었다.
시속 200킬로미터로 움직이는 기동전술 차량에 탑승하고 이른 새벽 느닷없이 나타나 포격을 가하고 사라지는 특전사의 공격으로 소코스 전역이 공포에 사로잡혀있다.
이제는 처음 처럼 하루에 몇 개의 도시를 타격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많아야 이틀에 한 번, 때로는 일주일 동안이나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한 번 나타나면 엄청난 화력으로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특전사 때문에 소코스는 전 국토에 병력을 분산시킬 수 밖에 없었다.

이런식으로 전쟁에 이끌려가다가는 결국 패배하고 말 것이라 생각한 스카나비스 로투스홀짝 국왕은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꾸기로 결정한 것이다.
필리아트라와의 전쟁에서도 느꼈지만, 스카나비스는 꽤 뛰어난 전략가이다.
소코스 군이 네메아로 넘어오면, 네메아에서도 전략을 수정하는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뚫어본 것이다.
“아마 운용 가능한 병력의 절반 이상을 투입하려는 것 같습니다.”
“절반이상이라면 적어도 오십만인가요?”
오십만의 대군을 막기 위해서는 네메아가 가진 전 병력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남겨둔 절반으로 서쪽의 필리아트라와 동쪽의 킬키스를 막아내면서 빠르게 아레오폴리스를 점령한다면 쉽게 전쟁을 끝낼 수 있다.
그동안 특수전 사령부가 더욱 날뛰겠지만, 그런 피해는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칠십만입니다.”
그동안 소코스는 예비군까지 긁어 모아 병력을 늘인 모양이다.
그리고 전쟁이 더욱 길어지면 그 이상의 병사가 투입될 것이다.
일반적인 국지전이 아니라, 국가의 명운을 건 전쟁이라면 이론적으로 한 나라 인구의 10%까지는 투입할 수 있으니, 수백만의 병사들을 상대하게 되는 것도 전혀 실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가 대량의 희생자를 만들어내는 끔찍한 결말만이 남게 된다.
우리쪽에서도 전쟁을 너무 길게 가는 것은 좋지 않다.
“아마 이곳에서 회전이 벌어지게 될 것 같습니다.”
해레이스는 테이블 위에 놓인 지도의 한지점을 가리켰다.
산들로 둘러쌓인 폭 수백 미터의 길이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이어진 곳이다.
해레이스는 어차피 전투가 벌어진다면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이루어지길 원했다.
“여기가 뚫리면 바로 평야지대입니다.
전력상 열세인 제국군에게는 불리한 지역이지요.”
최대한의 병사를 투입하면 삼십 오만 명이 이 한 번의 전투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적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문제는 적의 마법사로군요.”
네메아 군의 고질적인 문제는 마법사의 부족, 그것도 고위 마법사가 상대하는 오픈홀덤 나라에 비해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킬키스와의 전쟁에서는 필리아트라 출신 대마법사의 힘을 빌어야 했다.
“어쩔 수 없지요. 그 대신 화력은 우리쪽이 압도적이니까요.”
“특전사의 활약이 아주 대단합니다.
함께 전투를 벌일 때도 대단하다는 생각은 해 왔지만, 이런 작전을 벌이는 것도 굉장한 효과가 있군요.”
화력 이야기가 나오자 해레이스는 특전사의 작전을 치하했다.
지금까지 전쟁을 우리가 원하는대로 끌어올 수 있던 것은 특전사의 테러 작전이 유효했기 때문이다.
“백작의 도움이 컸지요.”
나도 해레이스를 치켜세웠다.
해레이스가 풀어놓은 간자들이 소코스 군의 이동 상황을 계속해서 알려주기 때문에 특전사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소코스 군과 마주치는 일 없이 효과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소코스 군과 마주쳐도 특전사가 패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인 부대로 특전사를 상대할 수는 없다.
특전사의 화력은 칼과 방패로 막아낼 수 있는 종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군에 마법사가 있다면 문제는 전혀 다르게 변한다.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몰라도, 8클래스 이상의 대마법사라면 혼자의 힘으로 특전사 1개 연대를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했다.
그리고 북방의 대국 소코스에는 적어도 3명 이상의 8클래스 수준의 대마법사가 있다.
그들 중 한 명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승패는 장담할 수 없다.
그간의 전투로 쌓은 데이터를 통해, 마법사를 상대할 전략을 만들어 놓았지만, 여전히 대마법사에 대한 대응 방안은 미흡하다.

때문에 정규군과 함께 행동하지 않는 이상 특전사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세이프게임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소코스와의 결전을 위해 우리는 그날 밤이 새도록 의견을 나누었다.
이 한 번의 전쟁으로 동부 대륙의 패자가 결정될 것이다.
일주일 뒤 팔십만 명의 소코스 군은 네메아와의 국경을 넘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십만 명이나 더 많은 병력이었다.
그리고 이틀 동안 부지런히 남하해 해레이스가 이끄는 제국군이 기다리는 장소에 도착했다.
아마 내일 오전에 시작될 것 같습니다.
김규현 사령관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번 회전에서 나는 그들과 함께 있지 않을 것이다.
그 순간 제 2 기동 여단과 함께 난 소코스의 중앙, 수도인 사투마레에서 30여 킬로미터 떨어진 산림 지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다들 준비는 하고 있나?”
내가 김규현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동안 여단장은 장교들을 시켜 휘하 대대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었다.
“드디어 움직일 수 있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울창한 숲에 도착한 것은 사흘 전이다.
수도가 있는 방향과는 반대쪽 산맥에서 등반을 시작해, 일주일 간의 강행군으로 3000미터가 넘는 산봉우리 열두 개를 넘어 간신이 도착했다.
지금까지 이용해오던 디멘션 도어는 8클래스 마법이기에 섣불리 사용할 수 없었다.
전쟁이 시작되고 수도 주변에는 마법사들이 잔뜩 깔려 혹시 모를 마법을 대비하고 있었고, 하늘에는 수도 없이 많은 새들이 날아다니며 감시하고 있었다.
때문에 우리는 고전적인 방법으로 움직여야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도보로 산을 넘고, 숲을 지나 최대한 수도에서 가까운 곳으로 오기까지 고난의 행군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 와중에 몬스터들을 만나도 화기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냉병기만을 세이프파워볼 사용해 상대했다.
단 한 번의 폭발음과 화염으로 은밀한 움직임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은 가디언들이 맡았다.
이번 작전에는 모두 100명의 가디언들도 투입되었다.
여정의 중간에 만날 몬스터들은 특전사 대원들이 화기 없이 상대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사흘 동안 너무 푹 쉬었습니다. 빨리 움직이고 싶어 좀이 쑤실 지경이라는군요.”
잠시 뒤 엉금 엉금 기어온 대대장들이 각 대대의 상황을 보고했다.
작전이 시작 되기 전의 마지막 작전 회의였다.
일주일 간의 강행군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뒤로는 때가 될 때까지 은신을 한 채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주위에는 아람드리 나무들이 빽빽하지만 혹시라도 적의 정찰병이나 퍼밀리어를 만나게 될 것을 우려해, 풀로 위장을 하고 움직임도 최소화 한 채 꼼짝도 않고 엎드려만 있었기에, 병사들이 답답해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출동 명령이 떨어지면 모두 1분 안에 차량에 탑승하도록 한다.
작전 지역까지는 6분 안에 도착해야하고, 별도의 지시가 없다면 화력 투사를 멈추지 않는다.”
여단장은 이미 몇 번이고 확인한 내용을 다시 한 번 대대장들에게 되 읊었다.
“충분합니다.”
1대대장이 대답했다.
우리가 숨어있는 곳은 숲이 끝나는 곳에서 약 300미터 떨어진 곳이다.
작전이 시작되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1분 안에 숲을 벗어나 전술 차량을 꺼내고 탑승해야 한다.
그동안의 훈력이 무의미하지는 않았는지, 이런 얼토 않은 작전을 대원들을 그다지 어려워하지 않았다.
적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 뒤에 시작될 것 같습니다.
김규현으로부터 전투 상황을 알리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생각보다 빠른 전개이다. 동이 트고 나서야 움직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아직 해가 뜨려면 세 시간은 남았다.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군.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이게.
전투를 책임진 사령관에게 더 이상 지시를 내릴 생각은 없지만, 적의 움직임이 수상해서 충고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상식적이지 않다. 이런 어둠 속에서 대군을 움직인다고?
틀림없이 무언가 노리는 것이 있다.
그리고 아마 그가 노리는 것은 특전사일 것이다.
이제 특전사의 화력은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
적들도 킬키스와의 전쟁에서 특전사의 활약은 익히 알고 있을 터이고, 소코스는 그에 대한 대비를 해놓았을 것이다.
적의 사령관이 소코스의 국왕이란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스카나비스 7세는 늘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낸다.
해레이스 사령관으로부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전투가 조금 일찍 시작될 것 같습니다.
해레이스도 그렇게 느낀 모양이다.
“출발하지.”
난 옆에 엎드려있는 여단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출발!”
다시 여단장이 지시를 내렸고, 가장 선두에 있던 1대대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가기 시작했다.
뒤를 이어 2대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도 가자.”
내 주변에는 백 명의 가디언들이 숨을 죽이고 엎드려 있었다.
그녀들은 작은 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대로 뛰어 올랐다.